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이 제각각이듯 인생역정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편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듯 굴곡 많은 인생을 산 이들을 우리 …
꿈결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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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4 19:37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이 제각각이듯 인생역정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편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듯 굴곡 많은 인생을 산 이들을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줄어들긴 했지만 개천에서 용이 난 경우도 예전에는 틈틈이 전해지곤 했다. 최윤철 법무법인 주성 대표변호사도 그 가운데 한명이다. 기계공고 졸업과 노조간부 근무, 해병대 복무, 10년간의 고시공부 끝에 응시제한 상한연령인 40세 때 사법시험 합격, 충북 최대 로펌 대표변호사 근무 등의 이력이 최 변호사의 순탄치 않았던 지난 삶을 대변해주고 있다. 지난 8월8일 청주지방법원 인근 법무법인 주성 사무실에서 만난 최 변호사는 “특이한 이력만큼이나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그동안 여유도 없이 뛰어왔다”면서 “법무법인 대표로서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우리 주변을 돌보고 법주사와 불교발전에도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강조했다.
최윤철 변호사는 지난 1979년 2월 청주기계공고를 졸업한 뒤 기술직으로 한국조폐공사에 입사했다. 조폐공사 노동조합 사무국장을 맡아 노동운동을 하다 보니 노동법 등 노동관련 전문지식이 없고서는 노동자의 권익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판단, 직접 노동운동 전문 변호사를 꿈꾸며 10년간 정든 직장을 떠났다.
목조주택
“전두환 정권 시절이다 보니 노동운동이 정말 힘겨웠어요. 어디 가서 물어 보려고 해도 노동법 등 노동관련 법률을 제대로 알고 있는 변호사를 만나기도 쉽지 않았던 시절인 만큼 제가 한번 해보겠다고 뛰어들었지요.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절대 뛰어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계공고를 졸업한 뒤 10년간 직장생활을 한 최 변호사에게 사법시험 공부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영어실력은 중학생 수준인데다가 한자로 빼곡한 법학서적은 읽어 내려갈 수조차 없었다. 경제법은 무슨 말인지 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법학서적 보단 한자사전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았고 한참 어린 중학생들과 함께 학원에서 밤늦게 까지 영어공부를 하기도 했다.
결혼 후 사법시험 공부에 뛰어들다보니 아내가 외벌이를 통해 뒷바라지를 해주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의정부청소년회관에서 청소 등 자원봉사를 하며 사법시험 공부에 매진하던 최 변호사는 1995년 처음으로 1차 시험에 합격했지만 최종 합격은 2000년 1월에서야 이뤄졌다. 10년간 사법시험을 공부한 뒤 응시제한 상한연령 마지막 해인 40세가 돼서야 합격한 것이다.
일류대학 법학과 출신도 합격하기 어려운 사법시험에 뒤늦게 도전해 응시 마지막 기회에서 합격한 최 변호사는 고향마을 주민들이 마을잔치를 열어 축하해줄 만큼 기쁨이 컸다. 하지만 사법시험 합격의 기쁨도 잠시. 사법연수원생과 이후 변호사 활동도 녹록치 않았다. 판사와 검사 출신이 아닌데다가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증가하면서 변호사 또한 넘쳐났다. 게다가 늦깎이 변호사이다 보니 어려움이 더 컸다. 2002년 1월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최 변호사는 그해 2월 곧바로 두리합동법률사무소를 공동으로 개소한데 이어 2007년 4월 5명의 변호사로 법무법인 주성을 설립했다. 개소 당시 인프라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 눈 팔지 않고 꾸준히 사람들을 만나며 인맥관리를 하면서 능력이 출중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하며 법무법인 규모를 키워 나갔다. 현재 법무법인 주성은 충북지역은 물론 중부권에서 최대 규모의 법무법인으로 성장했다.
한정승인신문공고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인생의 여유를 모른 채 앞만 보고 뛰어왔어요. 현재 저는 법무법인 경영을 중심으로 일하면서 노동사건과 민ㆍ형사사건 가운데 복잡한 문제를 가끔씩 담당하고 있습니다. 10여 년 동안 기반을 닦아 이제는 자연스레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앞으로는 인생의 여유를 찾으며 보다 멋지고 의미가 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합니다.”
최 변호사는 독실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불자로 성장했다. 어머니와 함께 동네 뒷산의 절에 다녔던 최 변호사는 사법시험을 공부하면서 불교와 인연이 더욱 더 공고해져 갔다. 사법시험 공부한 지 5년째 되는 해부터 하루일과를 반야심경 사경으로 시작했다. 불교서적도 틈나는 대로 열독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고시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다 음성 관음암으로 공부방을 옮긴 뒤에는 틈나는 대로 법당에서 108배와 1080배를 하며 불심을 키웠다. 사법연수원생 시절에는 다르마법우회 활동을 통해 불교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한정승인신문공고
“사실 저는 아직도 불교에 대해 잘 몰라요. 하지만 사경하고 독송하고 절하다보면 정신이 집중되고 맑아져 너무 좋았어요. 사법시험 준비할 때에는 늦은 밤에 혼자 법당에서 1080배를 올리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마음이 너무 편안해졌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틈나는 대로 절을 찾아 법당에서 3배를 올리고 사경하고 독송하고 있답니다.”
현재 최 변호사는 <금강경> 1000독을 서원하고 틈나는 대로 독송하고 있다. 법주사 주지 현조스님이 취봉이라는 법명을 내려준 뒤 <금강경> 1000독을 권유하면서 책을 건네 시작됐다. “일체의 상을 떠나면 부처를 본다는 구절이 너무 와 닿아 <금강경>을 즐겨 독송하고 있어요. 지금은 무아라는 글귀가 들어 간 달마도를 사무실에 걸어놨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라는 <금강경> 구절을 걸어놓고 마음에 늘 새겼지요.”
한정승인신문공고
최 변호사는 제5교구본사 법주사 신도회장 소임을 6개월 동안 고사하다 지난 4월 소임을 맡게 됐다. 수많은 참배객과 관광객이 찾았던 법주사의 사격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주지 현조스님의 힘겨운 활동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신도회장 제안을 받아들였다.
최 변호사는 우선 법주사 말사 신도회장들과의 모임을 통해 충북불교를 책임지고 있는 제5교구본사의 역량을 결집시켜 나가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수십 년 전부터 대규모의 수학여행객을 대상으로 조성된 사하촌을 힐링과 행복을 전하는 새로운 타운이 될 수 있도록 변모시키고 법주사가 자체적인 사회복지법인과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뒷받침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법주사에서는 사하촌 변모를 위해 전문용역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수립한 뒤 현재 추진 중이다. 아울러 찾아오길 기다리는 불교에서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불교가 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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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훌륭한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지 못한 게 안타까웠는데 주지 현조스님과 차담을 나누다보니 저와 뜻을 같이 하는 게 많아 신도회장 소임을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어 맡게 됐습니다. 주지 스님 등 법주사 스님들이 법주사와 충북불교, 더 나아가 한국불교 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만큼 제가 그 일이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지원 등을 통해 외호하는 역할에 충실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1960년 7월 충북 음성군에서 태어난 최윤철 법무법인 주성 대표변호사는 청주기계공고를 거쳐 방송통신대 법학과와 대진대 법무행정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고교 졸업 후 한국조폐공사 노동조합 사무국장 소임을 맡다가 노동운동 전문 변호사를 꿈꾸며 10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힘든 사법시험 공부길에 들었다.
2002년 사법연수원 31기로 수료한 최 변호사는 두리합동법률사무소를 공동으로 개소한데 이어 2007년 4월 법무법인 주성을 개소해 대표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청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장과 충북건축분쟁조정위원, 충북중소기업사업 사전조정협의회 위원, 충북정신보건심판위원회 심의위원, 충북도의회 고문변호사, 한국전력공사 충북본부 지정변호사, 뉴시스통신사 충북취재본부 대표 등을 맡아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조계종 제5교구본사 법주사 신도회장 소임을 맡아 충북불교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